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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 통제할 수 있음에 대하여

통제할 수 있는 상황과 없는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내가 통제 가능한 범위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서 유능감을 얻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지 않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특정 “상황”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재단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느끼기에, 상황에 관여되는 인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기본적으로 타인은 변수다.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경험이 없다면 그 상황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엮여있고, 얼마나 많은 이권이 얽혀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경험”을 이길 수 없다.

비스마르크는은 “현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우자(愚子)는 경험에서 배운다.” 라고 했다. 적어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울 수는 있지만,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깨달음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아니, 그 전에 어디에 목표를 둬야 하는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고통스러워진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기 위해서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목표”가 통제 불가능하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은 나태다. 그런 마음가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대한 내 주변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 “하루의 시작은 침대 정리부터”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최소 단위의 성공을 통해 통제의 감각을 깨우고 내 손으로 하나씩 정복해 나갈 때,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상에서 꺾이지 않을 수 있다. (사실 한번 꺾여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 모든 것의 결과가 내 뜻대로만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내가 노력을 넣어도 안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통제의 감각을 갖고 있다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다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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